❝ 하산과 생활도(生活道) ❞
몸이 돼야 사람이 된다.
신선은 말이나 글, 발자취를 남기지 않는 법이다.
이제까지 모든 신선이 그랬다. 어리석은 인간들과 말을 섞어봐야 헛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 세상과 등진 채 산에서 산 것이다. 산에서 내려온 뒤 도장을 열어 35년 동안 혈기도를 가르치는 셰르파(sherpa) 노릇을 하다 보니,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같은 말을 수백 번 반복해도, 이전까지 망가진 몸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같은 실수를 수백 번 반복할 뿐이다. 왜 선생님이 세상 사람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신선에게 몸으로 직접 배운 나는 왜 이 책을 쓰고 있을까?
천우 선생님은 인간이나 인간 세상의 진정한 변화는 불가능하고, 만약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망상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 지구를 살리려면 사람이 살아야 하고 사람이 살려면 몸이 제대로 돼야 한다. 그런데 세상의 인간들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도무지 말을 듣지도 않고, 들어도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나는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면 노력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보질 않았다. 선생님에게 배우면서도 언젠가는 하산해서 세상에 몸을 제대로 살리는 방법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몸을 찾는 근본을 가르친다.
나는 82살이지만 혈기도의 원리를 체득하고 행공수련에 힘쓰는 제자들을 현장에서 직접 가르치고 있다. 에베레스트 산을 오를 때 제대로 된 셰르파를 따라가면 실패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몸을 닦는 행공을 도와주는 셰르파일 뿐이다. 50여 년 동안 혈기도에 몰두해 온 나의 결론은 간단하다. 행공에 지름길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대충대충 쉬운 동작만 가르치면서 이곳저곳에 도장을 많이 열어봐야 헛수고일 뿐이다. 몸을 경시하여 인간을 무너뜨리는 현대인들에게 몸을 닦아 진정한 나를 찾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혈기도이다. 도를 받아먹을 수 있는 사람만 스스로 가져가라는 것이다. 몸을 닦고 안 닦고는 그들 자신의 몫이다.
혈기도는 몸에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도다. 그래서 쉽지 않다. 하면 할수록 점점 몸에 '깊이' 빠져들어 내 몸에 미쳐야 뭔가를 이룰 수 있다. '얕게' 접근하면 시간 낭비일뿐 결국 이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지금도 틈만 나면 훌쩍 경기도 가평군 현리에 마련한 은거지로 가곤 한다. 산이야말로 도인이 거처할 안식처이다. 한국의 산만큼 기운이 생동하는 곳은 없다.
내가 천우 선생님에게 배운 행공 동작만 해도 356가지나 된다. 그러나 속세에 돌아와 지금까지 가르친 것은 예비행공과 허리굽혀펴기행공 등 불과 100여 개 동작에 불과하다. 선생님에게 배운 무술과 의술은 아직 소개조차 하지 못했다.
혈기도 수련자의 몸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몸 전체가 거짓말같이 변해야 한다. 나는 신선도의 '근본'을 가르치려고 산에서 내려왔다. 도장에서 내가 가르치는 방식이 "신선들의 행공 그대로여서 힘들다" 면서 교습방법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불평하는 제자도 있었다. 산에서 천우 선생님에게 배운 행공 동작을 일반인에게 그대로 가르칠 수 없다. '생활'을 하면서 제한된 시간을 쪼개 수련하는 일반인이 수련자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생활도' 개념을 도입해서 일반인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혈기도 수련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행공에는 깊이가 있어야 한다. 또 많은 사람이 건강한 몸을 되찾아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저변을 넓히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는 여든 살이 넘은 나이에 아직 도장에서 셰르파 노릇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제자들이 행공을 제대로 할 정도로 자리가 잡히면 나는 홀로 나의 길을 갈 것이다. 산은 나의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도(道)에 목마르던 어린 시절
1936년 부산 동래에서 허(許)씨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장수(章壽)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 큰 부잣집이었고 외갓집도 대지주 집안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서울에 올라올 때 까지 부산에서 쭉 살았다. 나는 천우(天宇)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원래 사람 사이에 계급이 있는 줄 알았다. 못생긴 사람과 잘 생긴 사람, 못난 사람과 잘 난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져 따로 있는 줄 알았다.
사서삼경(四書三經)에서 공자도 군자와 소인을 나눠서 인간을 설명했다. 키는 작았지만 어릴 적부터 무술을 좋아했다. 몸이 날래고 강한 편이었다. 권투도 배워 아마추어 복싱 전국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권투 할 때는 지고는 못배겼다. 타고난 천성이 그런 것 같다. 링에 오르면 3회전 안에 이기든 지든 끝장을 봤다. 다른 선수들이 나와 맞겨루는 시합하는 걸 싫어할 정도였다. 어릴 적 내게는 권투가 참 매력적이었다.
권투 특기생으로 경희대학교 체육학과에 들어갔지만, 이후에는 태권도, 중국무술 등도 연마했다. 어려서부터 안 된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 무조건 열심히 연습을 하면 다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산에 가기 전에 사업을 한 적도 있었는데 실패한 적이 없었다. 왜 사업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냥 하고 싶었다. 그때 나의 기운이 그랬다. 그렇다고 욕심도 없었다. 우리 사회가 정말 못 먹고 살던 시절인 1960년대 초, 지금도 부러움의 대상인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 오토바이나 고급 지프차를 몰고 다니는 자동차 마니아이기도 했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뭔가에 목말라 했다. 어딘가 항상 허전했다. "과연 도(道)가 있을까?" "깊은 산속에는 그런 궁금증을 풀어 줄 스승이 살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어렸을 때도 집에 있는 많은 하인과 함께 '다른 세계로, 바다나 섬으로 가서 같이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다른 세계를 찾고 싶은 마음을 어려서부터 늘 간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