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김 0 0 님
나이 : 33세(서기 1983년 생)
모자란 게 없이 살면서도 모자랐고, 채우려 해도 채울 수가 없었던 삶의 한 가운데에 선 제 이야기가, 지금의 이 혈기도 체험기를 써 주었습니다. 이 체험기 속, 김 동혁으로 동화되어, 생생하게 체험하 듯 읽어 내려 가시길 바라겠습니다.
제가 혈기도에 입문하기 전에는, 늘 허약 체질에, 이유를 알지 못 할 피로에 시달렸습니다. 늘 몸이 무겁고, 활력이 없었으며,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생활을 할 리가 만무하였습니다. 무리한 활동도 아닌데, 쉬이 지쳤으며, 잠을 자도 개운치가 않아서 또 자고, 그러다, 새벽에 늦게 자는 일상의 악순환의 반복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나이도 아닌데, 벌써부터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집에서 스트레칭도 해 보고, 근육을 키우는 웨이트 트레이닝도 해 보고, 나름 대로의 자구책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러한 일련의 발버둥이 약간의 활력과 자신감을 찾아 주기는 했지만, 제 어긋난 삶의 깊은 뿌리까지 송두리째 솎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집에서 혼자 하는 운동의 한계인 것이었습니다. 체형 또한, 오랜 컴퓨터 게임과, 컴퓨터를 가까이 하는 문서 업무, 요추를 놔 버리는 잘못된 착석 습관으로, 허리는 뒤로 물러 나고, 가슴은 움츠려 들어 휘어 보이는, 아주 잘못된 습관으로 망가져 버렸습니다.
제 지인들도 저를 볼 때 간혹, “가슴을 펴라.”, “선 자세가 왜 이리 구부정해 보이냐.”는 얘기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자세로 활동을 하니, 원인을 모를 명치 쪽 갑갑함, 도저히 코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심한 비염은, 거의 반 평생을 같이 해 온 죽마고우였으며, 심한 목 근육의 경직, 외에도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온갖 잔병 치레들을 훈장삼아 주렁 주렁 치장하며 이 지상을 활보해 다녔던 것입니다. 대관절, 몸 상태가 이러니, 마음과 생각이 건강하고, 밝을 리가 없었습니다.
2009년부터 시작한 DVD 영화방 사업에 열정적으로 매진하여 나름 대로 돈도 만져 보고, 사회인으로써 한 단계 성장하기도 했지만, 제 마음 깊은 한 구석 어딘가에서부터 모락 모락 피어 오르는 공허함과, 채워도 채워 지지 않는 모자람의 연기가 저를 지치게 했습니다. 자영업인 제 사업은, 아르바이트를 어떤 사람을 채용하느냐, 그 사람을 어떻게 육성, 관리하고, 얼만큼 붙잡아 두느냐에 따라 제 스케쥴과 매출의 상승, 하락 여부가 달려 있습니다. 이따금씩 아르바이트가 장기간 못 구해 지거나, 근무의 질이 형편 없으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아르바이트가 없어도, 제가 매장에 상주하면서 인건비도 벌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 게 아니었습니다.
“돈이야 벌지만, 내가 10년, 20년 후에도 이러고 있어야 하나? 나에게 주어 진 시간이 삶이고, 그 삶을 한 번 즐겁고, 의미를 만들며, 후회 없이 살려고 이렇게 돈도 벌고, 고생도 하는 것인데……“
딱히 꼬집기는 어려웠지만, 직관적으로 무언가 제 삶의 방향이 잘못됨을 느꼈습니다.
“이런 삶을 살려고 한 게 아닌데……”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삶이었습니다.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데, 돈을 벌기 위해 소중한 인생의 심지를 태우는 것입니다.
그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 세상의 시각을 달리 하게 됐습니다.
“내가 이 세상 속에 들어 가, 하나의 개체로서 이 세상의 일원이 되어 조화를 이루고, 거기서 행복을 찾는다고 한다면, 돈을 벌자. 그런데 돈이란, 내가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벌 수 있는 것. 비단, 돈 벌이 뿐이겠나? 내가 100살을 살던, 200살을 살던, 아프면서 병상 위에 산다고 한들, 그 삶이 무슨 의미야? 나(내 몸)부터 바로 서야 되겠구나. 내 건강과 내 삶(시간)을 외면한 채, 푼돈 벌이에 다시 주어 지지 않는 이 소중한 삶을 허비하지 말자.”
그렇게 다짐을 한 후부터 아르바이트 채용, 관리로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는, 믿을 수 있는 자에게 임금을 비싸게 주고라도 위임하는 걸로 결심했습니다.
저에게 오랜 벗이 한 명 있는데, 세상을 보는 시각이나, 가치관, 태도가 판이하게 달랐지만, “내가 이 친구라면, 나의 소중한 매장을 맡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파격적인 임금을 요구해도, 수용해 줬습니다. 사실, 현재 매출에 대비했을 적에, 적자 안 나면 다행일 정도로 이 친구에게 주는 임금은 너무나도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악순환의 수렁으로 다시 자진해서 들어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이 친구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도전하게 만들고, 기회를 주자. 그래서, 그가 성장했을 때, 내가 이 친구에게 약속한 임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나에게 돌아 올 것이다.”
사회인으로서 너무나도 부족함이 많은 친구지만, 믿고 지켜 보기로 하면서, 서로 노력하겠노라며, 그렇게 제 악순환의 첫 출발선을 끊게 되었습니다. 숨 고르기를 할 여유가 생겼으니, 본격적으로 제 몸을 만들 곳을 물색하게 됐습니다.
“집에서 혼자 주먹구구 식으로 하는 운동 따위로는 안 되겠구나. 망가 진 내 몸을 바로 잡고, 잡병을 털어 버리며, 강건하게 만드는 곳을 찾아 봐야겠다. 어떤 곳을 다닐까? 요가? 명상 수련? 헬스장……?”
여러 수련 단체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는데, 몇 몇 군데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 곳들은 국내에서도 기업적인 수준으로, 전국적으로 도장들이 많고, 누구나 한 번 쯤은 이름을 들어 봄직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대한 안 좋은 풍문들을 적지 않게 접할 수 있었고, 그렇게 규모가 크고, 조직적인 곳은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도장을 물색하던 찰나, 지금의 혈기도란 도장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전혀 이름도 생소하고, 규모 또한 커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혈 선생님께서 천우 선생님을 찾아 입산하여 오랜 세월 동안 수행하신 행적, 적으신 나이가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은연하게 흐르는 동자의 면모, 보기에도 놀라운 여러 가지 행공 동작을 직접 선 보이시는 등, 마치, “내가 바로 혈기도의 결정체이자, 살아 있는 증인이다!”고, 사자후하시는 듯 했습니다.
“아! 이 곳이라면 내가 한 번 도전해 볼 만 한 곳이구나! 저렇게 선생님께서 혈기도의 효험을 무언으로 보장하시는데!”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데, 선뜻 용기가 안 났지만, 더 주저할 수록 용기가 안 날 것 같아, 딱 눈감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청량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으신 선생님과 입문에 대한 간단하게 통화를 마치고, 약속한 날짜에 찾아 뵙고, 상담을 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 중, 선생님께선 “도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물으셨고, 저는, “도란, 말 그대로 어떠한 목적을 달하기 위해 가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답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도란, ‘My Way’이며, 누구도 대신해 갈 수 없는 나만의 길이다. 나는 그 길을 안내해 주는 셰르파.”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여러 말씀 중에 안개 너머의 실체가 일부만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 한 것처럼 막연하게나마 이해를 하였고, 알쏭 달쏭하였지만, “하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새 도복을 받고, 한참 선배로 보이는 어느 도반(장영숙 도반 님)에게 토 호흡, 앉는 법과 호흡법, 인사법 등을 배우는 것으로, 본격적인 혈기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각오한 대로, 혈기도 행공은 절대 녹록치 않았습니다.
예비공은, 올바른 자세는 커녕, 호흡이 안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반 가부좌 상태로 4, 5번부터 다리가 심하게 저려서 참기가 힘들고, 7, 11번 행공은 팔도 제대로 올리기가 힘들었습니다. 매 행공 시간 때마다 반복하는 것이지만, 두 눈으로 봐도, 당췌 뭐가 뭔 지를 모르겠고, 정말,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제 몸의 유연성이 떨어 지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각오를 하였지만, “이렇게 몸이 굳어 있을 정도로 내 몸을 방치해 두었구나.”, 하는 비참함과, 반성할 촌각도 모자랄 정도로, 행공 시간은 고통스러운 시간의 지루한 향연이었습니다.
“제발, 남들 하는 정도의 반은 커녕, 흉내 만이라도 비슷하게 냈으면 좋겠다.”
발을 앞으로 쭉 펴서 앉기, 90도로 다리를 벌려서 앉는 행공은 오금이 떠서 펴 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양 손을 뒤로 짚지 않고서는 제대로 앉는 것이 힘들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숨을 내 쉬고, 앞으로 굽혀 보려 노력해도, 좌절한 실패자 마냥, 고개를 떨구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묘사를 해도, 가위 벌리기나, 다른 고난이도 행공은 그림자 주변도 범접하지 못 한 것은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일일히 다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고, 링겔만 안 차고 다녔다 뿐이지, 제몸은 최악의 녹슨 고철 덩어리였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고, 실망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새로운 길에 내 딛는 힘찬 발걸음, 도전,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다짐의 꺼지지 않는 원동력이 저를 넘어 져도 다시 일어 서게 했습니다.
“여기서 포기하면, 다른 어떤 고난이 와도, 난 또 그 때처럼 좌절할 것이다.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다시 그 비참한 무저갱에서 허우적대는 삶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아침에 기상해서 오전의 행공 시간이나, 이따금씩 시간적 여유가 생길 적에, “도장에 가야 하나?”, 고민이 될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쉬운 행공이던, 어려운 행공이던, 어차피 저에게는 다 의미가 없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도장이라는 공간은 소 잡는 칼만 없었다 뿐이지, 도살장과 진배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여기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행공 중의 날카로운 고통울 직면하는 순간이나, “도장에 가야 하나?”, 하는 고민을 인식하는 그 촌각, 그 순간을 피할 수록 더욱 두려움을 키우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 번 피하게 되면, 다음의 그 순간이 와도, 또 똑같이 피하게 될 것이며, 그 하나의 틈이 나중에는 둘, 넷이 되고, 이윽고, 천이 되고, 만이 되는 것입니다. “도장에 갈까?”, 고민이 제 머릿 속을 휘젓는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제 두 다리를 끌고서라도, 도장에 제 몸뚱이를 집어 넣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시간적으로 틈만 나면, 도장에서 행공에 매진하였습니다.
그렇게 혈기도에 입문한 지가 반 년째입니다.
육체적으로는 활력과 자신감을 되 찾았고, 2시간 행공도 버티기 힘들던 체력이, 지금은, 4시간, 6시간 행공도 도전할 여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유연성, 근력이 향상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일차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는, 입문 당시 대략, 73~74Kg에 달했던 체중이, 지금은 61Kg으로 대폭 감량이 되었습니다. 탐욕과 게으름이 집약된 산실체인, 거추장스러운 살 덩어리들을 여의게 되니, 몸이 홀가분해 지고, 호흡과 행공하기가 수월해 졌습니다. 거르지 않는 규칙적인 행공과, “물을 가까이 하고, 소식을 실천하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영광이었습니다.
입문 전에 입고 다녔던 32~33인치 바지가 도저히 맞지가 많아 새로 정리하고, 수선을 해서 줄이거나, 20대 초반에 입었던 28인치 사이즈 바지를 다시 사고 있으며, 벨트는 제일 안 쪽 구멍도 커서, 역시 새로 사거나, 수선을 맡겨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체중 감량이 되니, 살에 가려 져 상실됐던 얼굴, 신체 전반의 윤곽이 보기 좋게 드러 나게 되었습니다. 구부정한 척추 체형도 조금씩은 제 자리를 찾아 가는 모양새입니다. 반 가부좌로 앉을 적의 모습도, 선배 도반들의 바람직한 모습을 서서히 닮아 가는 것 같습니다. 또한, 행공에 있어 호흡의 중요성을 절대 빠트릴 수가 없는데, 아직도 정말 많이 부족하지만, “단전의 기운을 느낀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호흡이 동작을 이끈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정도의 진척이 있게 되었습니다. 행공 중에 호흡이 원활할 때가 있고, 매우 그렇지 못 할 때가 있는데, 호흡이 되지 않을 때의 행공은 쭉정이가 된 느낌이며, 고통이 더욱 크게 다가 오고, 노동스럽다는 진실도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반면, 호흡이 잘 될 때는 뒤 따르는 동작도 일사천리였고, 도리어 힘도 들지 않으니, 신기한 체험이었습니다.
행공으로 얻는 결실은 신체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혈기도에 있어 포기란 없다.”,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불굴의 정신, “고통을 따라 가라.”는 가르침은 고통을 더욱 용기있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에도, 선생님께서는 제 자신을 돌아 보게 되고, 반성하게 되며, 막혀서 방황했던 길의 비전을 제시해 주시는, 훌륭한 가르침을 많이 주셨습니다. 단순히 다리를 찢고, 하찮은 잔 묘기나 연마하는 곳이 아닌, 뗄래야 뗼 수 없는 ‘삶’을 배우고, 닦는 ‘인생 공부장’이란 점에서, 제 발길이 계속 혈기도 도장을 향하게 합니다. 아마, 지식의 전달자라는 개념으로, 직업인으로서 가르치는 곳이었다면, 제가 과연 계속 다녔을까, 의문입니다.
주변 지인들은 역시 체중 감량에 대해 일차적으로 놀라워 하고, 어떤 비결이냐고 묻습니다. 답변을 하긴 하지만, 뭔가 특출난 비법을 기대했던지, “어떻게?”에 대해서는 그다지 놀라워 하지는 않는 눈치였습니다. 혈기도에 대해 낯 설어 하는 것은 당연지사라 쳐도, 식사량 줄이고, 물을 공복 시 꼭 마시는 것 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의지와 실천의 문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갑작스런 사고 방식, 생활 패턴의 변화라던가, 부쩍 달라 진 외모를 생경해 하는 반응도 있고, 행공 몇 가지 동작을 권해 보기도 했지만, 몇 번 하다가 이내 힘들다며 단념할 뿐이었습니다. 고통과 역경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저를 너무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기에, 그래서, 진정 벗어 나고 싶었기에, 그 다짐의 씨앗이 지금의 변화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그 진하면서도 지리한 고난이 없었다면, 저는 그에 만족하며, 악습을 답습하고 살았을 것이고, 제 삶의 수준 또한 거기에 머무르고 말았을 겁니다. 상실되어야 비로소 가치의 존재감과 소중함을 느끼는 우리네 인간들이란, 지혜로운 듯 하면서도,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도장을 계속 다니면, 으레히 흰 띠 때 단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지켜 본 결과, 혈기도 행공을 마치, 애초부터 등극할 수 없는 태산처럼 너무 중압적으로 여기거나, 막연히 스트레스, 일상의 번뇌 따위를 해소하는 신선 놀음의 도락터, 단순히, 내가 내 돈 내고 다니니까, 내가 오고 싶을 때 오고, 안 오고 싶으면 안 오는 체조, 명상 학원 따위로 가볍게 접근한 것은 아닌 지, 안타까움이 마음 한 곳에 자리합니다.
그들은 혈기도 뿐 아니라, 자신의 막힌 삶의 장벽을 돌파할 무언가도 간절하지 않을 정도로 아쉽지 않거나, “역시 나는 안 돼, 할 수 없어.”, “난 저들처럼 젊지 않으니까, 난 늙어서 이미 늦었어.”, 내지는, 마치, 애초부터 혈기도를 할 수 있는 연령, 신체 조건이 따로 있는데, 나는 그에 포함되지 않아서 안 될 거라는 패배 의식이 너무 눈이 부셔서, 절로 한 손을 올려 눈을 가리지 않을 수가 없게끔 찬란했을 겁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들에게 미안해 해야 할 것입니다.
저 혼자, 제 본위의 도가니에 심취해 주먹구구 식으로 행공을 했다면, 저 역시도 그들처럼 포기했을 지도 모르거니와, 결코 지금의 행공 수준은 못 되었을 겁니다. 저를 객관적으로 봐서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선생님, 사범님이 계셨기 때문이고, 또 옆에서 같이 행공하는 것만으로 행공에 도움을 주는 도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곁에서 채찍 질하고, 이끌어 주시지 못 했다면, 고비의 순간을 넘기지 못 했을 것이고, 쉽게 포기했을 겁니다. 이렇 듯, 저 혼자의 자력으로만 이룬 것은 많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타력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가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선생님의 소중한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포기를 결정하기 전까지, “내가 따뜻한 격려의 한 마디라던가, 그들이 혹시 혈기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먹구름 따위를 거두는 데 작은 손을 뻗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련이 남습니다.
혈기도 입문 전에는 아침이 싫었습니다. 더 자고 싶은데 잘 수도 없고, 눈을 뜨면 또 해치워야 할 숙제 덩어리가 제 책상 한 켠에 묵직하게 존재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지루하고, 재미없는 세상 속에 다시 파고 들어야 하는 것이 저를 지리하고, 지치게 만들었기에, 그래서 다시 잠에 들고 싶었지만, 지금은, “오늘은 무엇을 할까? 미루던 해묵은 일들을 처리할까? 미처 해 보지 못 했던 것들을 해 볼까?”, 하는 설레이는 고민을 하게 되는, 꽤 괜찮은 아침으로 다가 옵니다. 예전의 삶이 시간 때우기 식의 일상을 버티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일이 됐던, 어떠한 생활이 됐던, 적극적으로 활기차게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벌써부터 이렇게 작은 변화가 주는 즐거움이 큰데, 앞으로 혈기도 행공을 계속 했을 때의 변화가 아직도 기대되고, 설레입니다.
모쪼록, 이 혈기도 체험기가 입문을 고민 중이신 분들의 결정에 자그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혈기도의 길을 걷는 도반 분들에게는, 같이 공유할 수 있는 행공의 유익한 공감대와 재미가 선사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혈기도라는 이 위대한 선물을 선사해 주신 선생님, 그리고, 여러 사범님, 도반 분들에게 진심으로 경의와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으로, 본 혈기도 체험기의 끝을 맺습니다.
2015년 2월 20일, 김 0 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