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0희(趙0熙)
64세
내 삶의 새로운 동력 穴氣道
2006년 늦은 여름 저녁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생전 들어보지 못한 혈기도라는 道의 도장에 나오라는 협박(?)을 받게 되었다. 직장업무와 관련하여 만났지만 항상 나의 건강이나 생활에 도움을 주어온 오랜 지기 黃南俊이 입회비를 본인이 납부했으니 무조건 당장 도장에 오라는 것이다. 내 안색이 좋지 않고 어깨에 객기가 많이 쌓여있어서 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그가 나를 혈기도에 입문 시킨 이유이다. 어릴 때 운동만을 한 적이 있고 줄곳 무슨 운동이든 해왔기 때문에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다만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그가 그 당시도 거액인 입회비 전액을 납부한 게 부담이 되어 뜨레비앙 지하에 있던 도장에 처음 발을 디딘 날이 2006년 9월 4일이다.
수염만 하야시던 우혈선생님의 “몇 살까지 살려하느냐”의 첫 질문에 70이 목표라 대답하여 엎드려뻗쳐를 당한 것이 혈기도의 입문이다. 선생님은 내가 스스로 볼 수 없는 목 뒷부분에 객기가 쌓여 혹 같이 튀어 나와 있다고 지적하시면서 결석 없이 꾸준히 행공을 하면 몸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평소 반가부좌자세로 앉아 보지 안했던 나는 예비공 시 10분을 앉을 수가 없었고 오른쪽 무릎은 지면에서 60도 이상 올라갔다. 물론 아직도 40도 정도의 기울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러한 내 몸의 부실 때문에 ‘발목돌리기’를 열심히 했고 그러면 다시 조금 더 앉을 수 있었다. 한번도 남보다 몸이 뒤진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도장내에서 가장 열악한 몸임을 알 수 있었다.
스스로 혈기도의 둔재라 느끼고 남이 3개월이면 되는 행공을 1년 이상의 기간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것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 도반들에게 미안함과 창피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끝까지 거북이처럼 완주하려 한다.
혈기도를 시작하기 바로 전부터 직장 등 사회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찾아왔는데, 지금까지 마음은 아팠지만 몸이 건전하게 유지되는 것은 남을 인정하고 ‘나의 길’을 가야 한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른 결과라 생각된다.
40대 초반에 3-4미터 앞의 사람의 얼굴이 잘 확인이 안 되고 운전 시 정확한 사물 확인을 위해 안경을 10여년 착용하였고 혈기도를 시작한 후에도 행공시만을 제외하고는 늘 착용해왔으나, 4-5년 전부터 안경을 쓰지 않는다. 안과에서는 0.1-0.2하던 좌우 시력이 0.5-0.8로 바뀌었다고 한다. 목 둘레가 굵어 사이즈가 큰 와이셔츠로도 목 단추를 채우지 못하고 넥타이로 가려 캄프러치하였으나 과거 입었던 셔츠의 목 단추 모두가 채워진다. 아직 목 주위의 객기가 다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목이 가늘어진 것을 느낀다. 행공의 진전이 느려 도반들에 비해 몸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나 몇 개월 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무엇 해서 얼굴이 좋아졌냐고 묻기도 하고 그중 몇 명은 혈기도를 경험하겠다고 도장에 오기도 했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현재까지 수련을 계속하는 이는 거의 없다. 다만, 나의 아내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2007년 5월 1일부터 현재까지 계속하고 있는데, 시작 시는 혼자 도장에 오기가 어려웠으나 7-8년 전부터 스스로 잘 다니고 몸도 많이 자유스러워졌다.
우리 부부는 더디지만 우리만의 각자 ‘MY WAY’를 찾아 계속 전진하려한다.
穴氣道 萬歲!